모란(牡丹:무딴)의 재배역사는 일찌기 약 1,500년 전인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웨이찐난베이차오)시대에 그 기록이 있는 바 당송(唐宋:탕쏭)시대에 이르러는 그 재배기술이 이미 상당히 발전하게 되었다.
당(唐:탕)시기 모란(牡丹:무딴)은 그 아름다움이 다른 꽃들의 자태를 압도하여 꽃 중의 왕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명(明:밍)시기에 수도 베이징(北京:베이찡) 극락사(极乐寺:찌러쓰) 내에는 모란(牡丹:무딴)을 곳곳에 심었다.
청(清:칭)시기에는 친왕(亲王:친왕)이 극락사(极乐寺:찌러쓰)에서 모란(牡丹:무딴)을 감상하고 편액(题匾:티비엔)에 국화사(国花寺:구어화쓰)라 한 바 이미 청(清:칭)시기에 모란(牡丹:무딴)은 국화(国花:꾸어화)의 월계관을 쓰게 되었다.
국화(国花:꾸어화)는 국가형상의 표현이다.
중국의 국화(国花:꾸어화)는 아직 미정 상태이다.
하지만 앞 시기에 많은 인사들이 국화(国花:꾸어화) 평가선발에서 여러가지 꽃 중에서 모란(牡丹:무딴)이 제일 현재의 개방개혁과 현대화 실현 및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대정신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즉 모란(牡丹:무딴)이야말로 중국의 대국 풍모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59년 가을 쩌우언라이(周恩来:주은래) 전 총리가 루어양(洛阳:낙양) 시찰 시 말하기를:“모란(牡丹:무딴)은 중국의 국보로 온화하고 점잖으며 귀한 티가 나고 화려하고 웅장 것이 우리 중화민족(中华民族:쫑화민쭈)이 흥성하고 번창하며 행복하다는 것을 상징한다.”라고 모란(牡丹:무딴)에 찬사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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