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환은 일단 외견상으로는 침착했다. 무표정하게 그저 침묵을 지킬뿐 당장은 크게 동요하는 빛을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멍하니 있다 고개를 푹 숙이는가 싶더니 어깨를 둘썩이기 시작했다. 양손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진징두와 석방장은 그런 그녀를 애처롭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자신들이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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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 이용호 화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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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빙 역시 곤혹스럽기는 진징두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안타까움은 그녀로 하여금 재서의 사건과 관련해 자신이 파악한 한가지 분명한 사실을 옥환에게 털어놓도록 끈질기게 유혹하고 있었으나 대 결단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고 있었다. 만약 결단을 내릴 경우 지금껏 이뤄놓은 모든 것을 버리는 데에서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인생까지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베이징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왕푸징 바로 인근 창안졔(長安街)의 구이빈러우(貴賓樓)호텔 커피숍 너머로 보이는 베이징의 야경은 그런 그녀의 심사와 별반 다르지 않게 휘뿌연 매연에 휩싸여 차츰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옥환은 모종의 결심을 굳힌 비감한 표정을 굳이 감추지 않고 있었다. 하빙은 잔뜩 경직된 표정으로 옥환을 쳐다봤다. 긴장이 지나쳤는지 어제부터 연이은 남편과의 격렬한 아침 섹스로 완전 파김치가 된 몸의 피로가 전혀 자각 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출근길에 잠깐 옥환의 야윈춘 즈위산좡 빌라로 들르기로 한 것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끝내기로 했어, 샤오빙!"
옥환이 드디어 하빙이 기다리는 말문을 열었다. 거실 소파에 몸을 푹 파묻은 차분한 모양새가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한 것이 틀림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뭐를?"
하빙이 짐짓 의아스러운 표정을 한 채 되물었다. 그녀는 옥환의 생각을 분명히 꿰고 있었으나 계속 말을 들어보는 것이 일단 순서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 사람하고의 인연이지 뭐야"
"갑자기 왜?"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아. 그런 사람을 사랑했다는 사실이 너무 한스러워. 양의 탈을 쓴 악마와 크게 다를 바가 뭐 있어, 그 사람의 범죄 사실이 말이야. 나한테 독일에서 잘해줬던 것도 지금 생각하니 말짱 위선적 행동이 아니었나 싶어"
옥환은 잔인해지고 있었다. 재서를 아예 진짜 끔찍한 파렴치범으로 단정하고 있었다. 아마도 밤새 고민하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결론을 내린 듯 했다. 사랑이 깊으면 미움이 더 깊어진다는 유행가 가사같은 말은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너무 성급한 것 아냐, 샤오환! 아직 정식 재판을 받지도 않았잖아. 어제 만난 분들도 그 사람이 무척 억울할 거라고 했잖아"
"중국 경찰이 억울한 사람을 체포할 정도로 형편 없다고 생각해, 샤오빙 너는? "
"그건 아니지만…"
하빙이 설왕설래 끝에 말을 얼버무렸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 옥환의 결정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그녀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아 옥환에게 설득 비슷한 권유를 마지막으로 건넸다.
"천려일실이라는 말도 있잖아. 만약에 그 사람이 진범이 아니라면 너한테 천추의 한이 될 수도 있잖아"
"아니야.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면서 그 사람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수백번도 더 해봤어. 그런데도 결론은 아니더군. 중국 경찰이 왜 죄없는 사람에게 엉뚱한 죄를 뒤집어 씌우겠어? 어머니도 그렇게 말씀하셨어"
(홍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