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지구촌 거의 대다수 나라에서 불후의 진리로 통하는 금언이 아닌가 싶다. 중국에도 당연히 이 말이 있다. 루루퉁뤄마(路路通羅馬)라고 쓴다.
그러나 솔직히 이 말은 중국인들에게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다. 이들은 모든 길은 차이나, 즉 중국으로 통한다고 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볼때 더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곰곰이 되새겨보면 나름대로 충분한 근거도 있다. 로마는 겨우 1500여년 남짓 정도를 지탱하는데 그쳤으나 중국은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약 150여년 동안을 제외하고라도 최소한 5000년동안은 세계적 강국이었으니 말이다.
이같은 중국인들의 자존심은 중화(中華)라는 단어에서 보듯 거의 생래적이라 해도 좋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상당 부분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 보인다. 지난 10여년동안 세계 경제의 큰 흐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진짜 그런 것 같다. 세계 유수 국가들의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중국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굳이 복잡하게 사례를 들 필요도 없다. 세계 500대 기업중에 중국에 진출하지 않은 기업들이 매우 드문 현실, 2006년 3월말 현재 무려 6400억달러에 이른다는 외국인직접투자(FDI)의 누계 총액만 살펴봐도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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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이 외자도 질을 가려 도입하기 시작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이 아직도 무조건 투자를 원하는 높은 기술의 다국적 기업중 하나인 지멘스의 투자행사. 지난 2005년 난징(南京)에 소프트웨어 회사를 합작으로 설립했을 때의 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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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세계 경제에서만큼은 먹혀들어가게 된 '모든 길은 중국으로 통한다'는 말은 중국 자체 시장이 갖는 엄청난 매력과 중국 경제 당국의 노력에 기인한다. 특히 각종 파격적인 우대 조치등을 내세운 중국 경제 당국의 외국 기업과 외자 유치를 위한 노력은 거의 결정적 원인으로 봐도 지나치지 않다. 중국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 기업과 외자의 천국으로 불린 것은 다 그동안의 이런 현실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결단코 없다. 또 끝나지 않는 잔치도 없다. 외국 기업과 외자의 좋은 시절이 이제는 다 지나갔거나 끝나가고 있다는 얘기이다. 요즘 외자에 대해 좀체 과거처럼 크게 호의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는 중국 중앙 및 지방 경제 당국의 행보를 보면 정말이지 이 말들은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우선 국회격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 3월 14일에 끝난 10기 4차 전체회의에서 외국 기업과 자본에 상당히 불리한 내용을 담은 올해의 정부공작보고를 통과시킨 것이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경우 진짜 상황이 간단치 않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기술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지거나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외자 프로젝트 규제 방침이다. 중국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사회 공익에 반하는 업체나 자본은 아예 '노 댕큐'의 공적(公敵)으로까지 취급하겠다는 의지가 아닌가 보인다. 이에 따라 철강, 제지, 화학 분야의 기술력 낮은 업체들이나 자본의 중국 진출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
그동안 광범위하게 시행해오던 기업소득세 혜택 폐지 방침 역시 더 이상 외자에 대한 무조건적 우대 조치는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대목이 아닌가 보인다. 원래 중국의 외국 기업에 대한 기업소득세는 33%로 내국 기업과 똑같다. 그러나 지금까지 외자에 대한 우대 조치 탓에 이를 제대로 적용받은 기업들은 거의 없었다. 대체로 내국 기업들보다 많게는 18%P, 적게는 9%P 덜 내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게다가 영업을 시작한 이후 최장 5년까지는 소득세를 전액 면제받거나 감면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내국 기업이 평균적으로 28%의 담세율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특혜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 이 혜택은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내자 기업과 동일하게 24%의소득세 부과 대상으로 명문화되는 것이다.
일견 견제같은 느낌을 주는 전인대의 외국 기업과 외자에 대한 방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중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최저 임금제 준수를 강력하게 유도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나 노동조합 인정, 퇴직금 지급을 권고하는 데에 이르면 더욱 복잡해진다. 중국이 이제 서서히 외자의 무덤이 돼가고 있다는 중국 주재 일부 외국인들의 느낌은 괜한 것이 아니라 단언할 수 있다.
더 이상 외국 기업이나 외자 유치에 광분하지 않는 지방 정부등의 자세 역시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그동안의 맹목적이거나 무차별적인 외자 유치를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하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공무원들의 외자 유치를 위한 외국행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 이런 분위기를 잘 대변해준다. 여기에 외자 유치시에 공무원들에게 지급하는 포상금과 외국 기업들에게는 거의 관례처럼 제공하던 일사분란한 행정 서비스의 축소등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외자를 황금알 낳는 거위로 인식하지 않기 시작한 중국의 자세 변화는 그동안 땅짚고 헤엄치기식 경영을 해온 외국 대기업들의 위기 의식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한국 굴지의 기업으로 꼽히는 모 전자회사의 경우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 회사는 그동안 중국에서 한마디로 잘 나갔다. 좋은 세월이 계속되면 한국의 본사만큼 영업 규모가 커지는 것은 거의 시간문제일듯 보이기도 했다. 적어도 외견적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이 회사의 중국 본사 사장은 최근의 한 사적인 모임에서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동안 중국 당국의 호의적인 배려 속에 엄청난 성장을 했다.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빠른 성장이었다. 작년 연말에 올해 경영 목표를 당초보다 20% 이상 높이 잡은 것은 그래서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 당국의 자세가 갑자기 180도로 변했다. 강력하게 세무 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투자에 대한 심사도 까다롭게 하기 시작했다. 뭔가 외국 기업과 자본에 대한 입장의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앞으로 중국에서 사업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한 일본 중소기업 대표의 볼멘 소리 역시 비슷한 사례가 될 듯 하다. 환경 설비 전문업체인 이 회사는 지난 수년동안 성실한 납세 관련 신고를 했음에도 지난해 연말 예년에는 경험하지 못한 강도높은 세무조사를 받았다. 당연히 평소처럼 좋은 영업 실적이 드러났다. 결과는 부가가치세 17%와 기업소득세 33%의 정확한 부과 처분이었다. 불과 1년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조치였으나 어쨌든 법을 따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최근의 횡액에 대해 "그동안 우리 업체는 부가가치세가 6%였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특혜를 줄 수 없게 됐다는 것이 세무 당국의 설명이었다. 부가가치세 17%와 기업소득세 33%를 제대로 내면 중국에서 사업하는 장점은 거의 없다. 향후 중국 법을 계속 준수할지 아니면 철수할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 같다"면서 중국이 이제 외국 기업이나 외자의 천국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한국 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한 도시로 유명한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의 현실도 좋은 참고가 될만 하다. 한때 이 도시는 언필칭 한국 기업들의 세상이었다. 무려 2만여개 전후의 크고 작은 기업들이 진출, 역내 경제 성장에 상당한 기여를 하던 것이 2-3년전의 일이었다. 칭다오시 정부가 매년 한국에 기업유치단을 파견할 정도였으니 한국 기업들과의 인연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굳이 더 이상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다. 여전히 한국 기업들의 활동이 왕성하기는 하나 전체적인 수는 크게 줄고 있다는 것이 현지 한국 기업인들의 전언이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세무조사 강화와 특혜 조치 축소등이 어우러져 철수하는 기업은 늘고 신규 투자를 하는 기업은 상당 부분 줄어든 탓이다. 심지어 일부 회사들은 아예 설비를 놔둔채 한국 경영진들이 야반도주하는 웃지못할 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불과 2-3년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할 일이 지금 칭다오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이처럼 외국 기업이나 외자에 대해 냉담해진 것은 사실 수년전부터 조심스럽게 예견돼온 것이기는 하다. 넘치는 외환보유고와 1조7000억달러에 이르는 풍부한 자국민들의 저축, 규제해도 500억달러 정도는 매년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등이 어우러지는 마당에 굳이 묻지마 외자 유치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배가 부르다는 얘기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헤지펀드일지 모르는 정체 불명의 자금에 대한 부담, 유치되는 외국 기업이나 외자의 수준을 몇단계 업그레이드시키자는 의욕등도 최근 보이는 행보의 이유로 꼽힌다.
물론 중국은 앞으로도 외국 기업이나 외자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을 것이 확실하다. 기술력이 있고 건전한 자본이라는 전제 조건을 충족시키는 외에 성실 납세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일 경우는 여전히 외국 기업들에게 중국 진출 기회는 열려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중국으로서는 당연히 외자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는 부대 효과도 톡톡히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 기업들이나 외자 기업들에게는 최근의 조치가 불만스러울지 모르나 적어도 중국은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 확실한 듯 하다.
(홍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