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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치는 가라, 법치가 온다
북경시간: 2006-11-13 00:48:56 
 
   중국은 전통적으로 인치(人治)의 나라였다. 당대 최고 지도자인 황제의 의지나 말이 법보다 언제나 우선했다. 5000여년 이상의 중국 역사를 거의 일관해 그래왔다고 단정해도 좋다. 춘추전국시대의 이사(李斯)나 상앙(商鞅)같은 이상주의자들이 각 왕조때마다 법에 의한 통치인 법치(法治)를 주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주지하다시피 결과는 언제나 원위치였다. 반동의 세력이 워낙 엄청난데다 왕권신수설의 신봉자들일 수 밖에 없는 황제들이 법치에 대해 생래적으로 거부반응을 가졌으니 그럴만도 했다. 다시 말해 중국에서는 "짐이 곧 국가이고 법이다"라는 프랑스의 절대 군주 루이 14세의 오만한 황권만이 존재했을뿐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은 언감생심이었던 것이다.

   인치는 사회 전체로 보면 득보다 실이 훨씬 더 많다. 세계 역사에서도 유례가 드문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 하나만 봐도 좋다. 당시 사회에 인간에 대한 예의는 둘째치고 법의 정신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런 끔찍한 야만적 행위는 아마 없었을지 모를 일이다.

   인치의 전통은 공산당이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지도로 대륙을 통일한 1949년 이후에도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극단적으로 나타났다고 해도 틀리다고 하기 어렵다. 1936년 장정(長征) 성공을 계기로 권력을 완전 장악한 마오 전 주석이 사망하던 76년까지 무려 30여년 가까이나 황제 이상가는 권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말을 국가의 최고 지도 규범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60년대 중반에서부터 10여년동안 전 대륙을 공황상태로 몰아넣은 문화대혁명은 바로 이 인치의 폐해가 가져온 결정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산당의 특징인 최고 지도부내의 파워 게임에서도 인치의 폐해는 극명하게 엿보인다. 지난 90년대 중반 비리 혐의로 막강한 베이징(北京)시 당 서기직에서 갑자기 낙마한 천시퉁(陳希同)의 사례가 좋은 증좌가 될 수 있다. 절대 권력을 구가한만큼 털어서 먼지가 전혀 안 나지는 않았겠으되 낙마의 원인이 비리보다는 그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베이징방(北京帮)을 실각시켜야 하겠다는 당시 최고 지도자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겸 총서기의 의지와 직접적 관계가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는 지금도 베이징 외교가에 널리 퍼져 있는 속설로 중국 정부 역시 비공식적으로는 인정하고 있다.

   지난 9월 25일 전격 발표된 천량위(陳良宇) 상하이(上海)시 당 서기의 해임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해임 사유가 무려 32억위안(元.3조84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사회보장기금의 유용 비리이기는 했으나 당 최고위층의 의중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하기 어려운 것이다. 천 전 서기가 원자바오(溫家寶)총리와 자주 불화했다거나 상부의 경제 정책에 사사건건 반발해 미운 털이 박혔다는 소문이 무성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진짜 그렇지 않나 보인다.

   전반적인 중국 사회가 법치와는 아직 일정한 거리가 있다는 사실은 법이 집행되는 현장인 법정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목숨까지 좌지우지할 법정의 판, 검사는 일정한 시험을 통과한 법률 지식이 많은 전공자들어어야 한다. 지구상의 거의 대부분 나라들이 로스쿨과 사법 시험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 내지 선발하는 것은 무엇보다 이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를 거의 외면했다.

   그저 법원과 검찰 내부의 자질 우수한 직원들중 일부에게 시험을 치르게 해 임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시험 역시 크게 어렵지 않았다. 10명이 응시하면 5-6명이 통과하는 그런 시험이었다. 특히 검사는 훨씬 더 정도가 심했다. 군대에서 장교로 제대한 자중에 자질이 우수한 이들을 특채하는 황당한 케이스도 없지 않았다. 중국이 법치의 중요성에 대해 얼마나 간과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단언해도 좋을 듯 하다.

   재판이 2심이라는 것도 나름의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황당하기만 하다. 잘못된 증거나 무리한 법리 해석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이들에게 보장해줘야 할 재심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 주변의 설명이다.

   이러니 일반인의 법에 대한 인식이 높을 까닭이 없다. 이 점에서는 지식의 유무와도 관계가 멀다. 문화대혁명 세대인 50대의 베이징 모 대학 정치학과 교수 J씨의 고백이 현실을 잘 말해줄 것 같다. "솔직히 우리 세대는 30여년전만 해도 법이라는 것을 잘 몰랐다. 그저 당의 헌법인 당헌만이 존재하는줄 알았다. 국가 차원에서 법률을 제정 내지 개정한다는 얘기도 지난 세기의 90년대까지만 해도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10여년전에는 한국같은 곳에서 실시하는 사법 시험과 미국의 로스쿨 제도를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아직 나같은 사람들이 중국에 적지 않게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민도로만 놓고 보면 법치주의가 중국에서 현실로 나타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고백이 아닌가 보인다.

   물론 중국이 그동안 인치를 지양하고 법치 확립을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중심에는 마오쩌둥에 이어 오랜 기간 인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덩샤오핑(鄧小平)이 있었다. 92년 춘제(春節.음력 설)때 그가 남순강화(南巡講話)에 나서면서 강조했던 말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국가의 운명이 몇몇 지도자들의 카리스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은 위험하고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상황을 수습하기 어렵다. 어떻게 해서든 법치로 가야 한다. 앞으로는 지도자들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의 미래는 어둡다"면서 인치의 폐해를 강조했던 것이다.

   요즘 들어서는 분위기도 꽤 심상치 않다. 당과 정부의 법치주의 국가로 가고자 하는 의지 역시 무척 강하다.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의 동향을 대표적으로 자세하게 눈여겨보면 분위기는 알기 쉽다. 정부의 각급 권력 기관에 대한 전인대의 감독 권한을 규정한 감독법을 비롯해 기업파산법, 물권법등 그동안 개념조차 모호했던 법률들을 제정했거나 적극적으로 할 예정으로 있다. 이에 대해서는 "그동안 중국의 전인대는 거수기 역할에만 만족했다. 명색이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기관이었으나 역할에 충실했던 적은 6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 같다. 당정의 법치주의 확립에 대한 의지가 강렬하다고 단언해도 좋다"는 변호사 추이산윈(崔山雲)씨의 말만 들어도 이해가 잘 될듯 하다.

   현장에서는 법치에 대한 열망이 더욱 확실하게 감지된다. 2002년 말부터 사상 처음 시작된 통합 사법시험이 이 열망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 같다. 서방 세계처럼 판사, 검사, 변호사등을 드디어 법률 전공자들중에서 선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열망은 법률 전공자라고 하기 어려운 기존의 판사, 검사등을 적극 도태시키거나 지난 93년부터 시험을 통해 선발해오고 있는 변호사들중에서 발탁, 대체하는 조치등에서도 잘 나타난다.

   중국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법치주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걸림돌 역시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많다. 무엇보다 최고 지도자의 의중이 가지는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다는 사실이 극복돼야 할 걸림돌이 아닌가 보인다. 더구나 이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특수성 탓에 상당 기간동안 개선될 가능성이 별로 크지 않다. 

   제대로 된 판사, 검사들이 아직은 햇병아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법에 대한 신뢰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이외에 일반인들의 법에 대한 인식 부족, 여전한 세부적 법률의 부재등도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현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는 암울하지 않다. 최고 지도부의 법치주의 확립에 대한 확고한 의지, 갈수록 빨라지는 전인대의 각종 법률 제정 행보등은 이런 단정을 가능케 해주는 긍정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아직은 만족스럽다고 하기는 어려울지 모르나 중국에 법치의 서서히 시대가 오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인 듯 하다.

(홍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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