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는 중국의 제1부 정사(正史)요, 중국에서는 제일로 손꼽히는 사서 중의 하나다.
하지만 《사기(史記)》를 보면 문제점이 많다.
때문에 과연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에 대한 반문이 생긴다.
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황제는 진시황(秦始皇)이라 부른다.
때문에 진시황(秦始皇)은 중국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황제 중의 하나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기에 여기에서도 처음으로 그를 다루어 보겠다.
사마천(司馬遷)의 생존기간은 기원전 145년—기원전 86년이며, 진시황(秦始皇)의 생존기간은 기원전 259년—기원전 210년이다.
그리고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를 저술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08년부터다.
진시황(秦始皇) 생존기간과 대략 백 년의 거리가 있다.
그런데,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보면 진시황(秦始皇)의 성(姓)이 3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진본기(秦本紀)》에는 그의 성(姓)을 영(嬴)으로 적고 있다.
그러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는 조(趙)와 여(呂)로 기록되어 있다.
한 책에, 한 사람이 쓴 기록이, 한 사람의 성(姓)을 3가지로 적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기(史記)》의 앞 뒤 안맞는 기록들이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추측과 상상을 불러 일으키게 하고, 심지어 역사가 소설화하는 지경에 이르고 역사왜곡이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이 부분만 보더라도 사마천(司馬遷)은 큰 실수를 범한 것이다.
진시황(秦始皇)의 성(姓)을 보면, 사마천(司馬遷)은 후세에 풀 수 없는 답을 남겨준 결과가 되었다.
이처럼 중요한 진시황(秦始皇)의 성(姓) 조차도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다른 부분의 기록이 과연 어느정도 정확할 것인가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중국의 제일 위대한 사가의 기록이 이처럼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때문에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정사(正史)라고 그 안에 있는 기록을 고증없이 액면 그대로 한 부분 만을 인용한다면 극히 위험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를 중국 사람들은 어떻게 말할 지 궁금하다!
(김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