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의하면 고조선은 기원전 4세기 말 중국 연나라가 칭왕하는 것에 뒤이어 마찬가지로 칭왕한 것으로 되어 있고, 기원전 2세기 초에는 위만이 준왕정권을 전복시킨 다음 왕험성(왕검성)에 도읍을 정하고 위만조선을 세웠으며, 기원전 109년 가을 위만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이 있을 때에는 한나라 군대가 왕험성의 방비가 견고하여 오랫동안 함락시키지 못하였으며, 기원전 108년 여름에는 위만조선의 대신 성기가 왕험성에서 한나라에 항거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중 위만조선은 그 왕성인 왕험성이 현재의 평양시 대동강 북안에 있었는데, 이는 위만조선과 한의 경계 역할을 한 패수(浿水)가 지금의 압록강이라는 점, 위만조선의 도읍 부근에 설치된 낙랑군 조선현의 치소가 지금의 평양시 대동강 남안의 토성동 토성이라는 점, 왕험성 및 조선현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열수(列水)가 지금의 대동강으로 비정되고 있다든지 하는 점을 통해서 입증된다. 따라서 위만조선이 전복한 준왕 대 고조선의 왕성 또한 지금의 평양에 있었던 셈이 된다.
준왕 이전의 고조선, 다시 말해 기원전 4세기 말~3세기 초 전국 연나라와의 전쟁으로 2,000여리를 빼앗기기 전의 고조선 중심지는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에 있었는지 분명치는 않다. 다만 준왕과 위만조선의 문화인 대동강유역의 세형동검문화가 요하유역 비파형동검문화의 후계문화이고 비파형동검문화가 요하유역에서 발전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요하유역의 어딘가에 고조선의 중심지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후보지로는 조양(朝陽), 금주(錦州), 북진(北鎭), 심양(沈陽), 요양(遼陽), 해성(海城), 개주(盖州) 등이 논의되고 있다.
(자료출처:동북아역사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