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강화도조약의 체결로 부산 초량항, 원산 및 인천이 개항된 이후 일본의 통화 및 자본의 한국 진출이 증가되었으며, 조선의 쌀과 금 등 주요 생산품이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당시 일본은 식량 및 원료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대량의 쌀과 콩을 수입한 결과, 조선에서 곡물가격이 폭등하고 식량부족현상이 대두되었다. 특히 일본으로의 쌀 수출 증대로 인한 곡물 가격의 폭등과 부족현상에 직면한 조선에서 흉년이 겹치자, 1889년 10월 함경도관찰사 조병식(趙秉式)이 원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수출되는 콩의 유출을 1년간 금지하는 방곡령을 실시하였다. 이에 대해 일본은 방곡령의 폐지와 담당자 처벌 및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였으며, 결국 한일 양국은 1893년 4월 총 11만원(圓)을 일본에 배상하는데 합의했다.
"조일통어장정(朝日通漁章程)"이 1889년 체결되어, 조선 영해에서 일본인 어업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었으며, 일본어선 한 척당 매년 3-10원의 세금 납부시 어업허가권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어업기술 낙후로 일본 어선의 일방적인 조업이 행해졌다. 러일전쟁이후에는 한일간 '어업협정서'가 체결되고(1908년), '한국어업법'이 제정·공포된 결과, 일본어선은 한국의 주요 연안어장을 독점하고 내수면까지 진출하였다.
1878년 3월 제일국립은행(第一國立銀行)의 부산지점 설치이후 일본 화폐가 한국에 크게 유통됨으로써, 한국 내 금융시장 및 통화제도를 잠식해갔다. 그 결과 원산, 인천, 부산 등 개항장을 비롯하여 주요 지방시장의 상권이 점차 일본 상인과 자본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제일은행은 차관제공의 대가로 한국의 해관은행의 지위를 확보하였으며, 1886년부터 1894년 사이 각 한국지점을 통하여 50여 차례에 걸쳐 총금액 약 40만원(圓)의 차관을 한국정부에 제공하였다.
1894년 12월 이노우에(井上馨) 주한 일본 공사가 조선에서 일본의 확고한 지위를 확보하는 방안의 하나로서 차관제공을 주장함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차관 20만원이 1895년 1월 탁지부에 교부되었으며, 1895년 3월 30일 300만원의 차관계약이 성립되었다. 이후 차관상환 압박에 시달려온 조선정부는 1897-99년에 275만원과 그 이자를 상환함에 따라 더욱 극심한 재정 곤란에 처하게 되었다.
조선 정부의 허가 없이 일본인들에 의한 불법 광산 채굴이 성행하여, 직산(稷山) 금광의 채굴권이 시부자와 에이이치(澁澤榮一)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1906년 광업법 공포이후 일본인 소유의 광산이 크게 증가하였다.
일본 자본은 경인선(1896-99), 경부선(1898-1905) 및 경의선(1904-06)의 철도 부설권 획득 및 건설과정에서 헐값에 토지를 수용하고, 공사현장에 한국인을 강제 동원하였다. 특히 1905년에 개통된 경부선은 군사수송뿐만 아니라 경상도, 전라도 및 충청도의 풍부한 물산을 취합하는 등 대일 수출입 상품의 수송망 역할을 담당하였다.
개항 이후 한국의 대외무역은 일본과의 수출입이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점차 그 규모가 확대되었으나, 무관세규정에 따라 관세주권이 상실되는 불평등성을 띠었다. 조선의 주요 수입품은 면직물 및 견직물로서, 청일전쟁이후 일본산 면직물의 수입 증대로 직조업 영위 농민들이 큰 타격받았다. 제지, 유기 및 도자기 산업도 일본산 수입증가로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근대한일관계 관련 주요 연표
| 1875년 9월 |
운양호사건 |
| 1876년 2월 |
수호조규(강화도조약) 체결 |
| 1879년 8월 |
원산항 개항 |
| 1882년 음력 6월 |
임오군란 |
| 1882년 8월 |
'제물포조약' |
| 1883년 9월 |
인천항 개항 |
| 1884년 12월 |
갑신정변 |
| 1885년 4월 |
텐진(天津)협의 |
| 1889년 9월 |
방곡령 반포 |
| 1894년 7월 |
일본군의 경복궁점거 |
| 1894년 8월 |
청일전쟁 개전 |
| 1894년 음력 9월 |
동학농민군 제2차봉기 |
| 1895년 4월 |
시모노세키(下關)조약 |
| 1895년 10월 |
민왕비(명성황후)시해사건 |
| 1896년 |
을미의병 봉기 |
| 1899년 9월 |
경인선 개통 |
| 1904년 2월 |
러일전쟁 발발 |
| 1904년 2월 23일 |
한일의정서 |
| 1904년 8월 22일 |
한일협약 |
| 1904년 11월10일 |
경부선 준공 |
| 1905년 9월 5일 |
포츠머스강화조약 |
| 1905년 11월 17일 |
'을사조약(제2차 한일협약)' 체결 |
| 1907년 7월 19일 |
고종황제 퇴위 |
| 1907년 7월 24일 |
'정미7조약(제3차 한일협약)' |
| 1907년 8월 1일 |
군대해산 |
| 1908년 12월 |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 |
| 1909년 7월 |
기유각서 |
| 1910년 8월 29일 |
한일병합 공포 |
(자료출처:동북아역사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