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당국은 네티즌들이 만드는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중국판을 놓고 세계의 정보 혁명에 낙오돼서는 안된다는 정책 아래 이를 수용했다가 공산당의 정보 통제에 위협으로 여겨지자 이를 차단하는 등 갈팡질팡해왔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0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중국어판 위키피디아는 지난 2001년 5월 개설됐으나 1년여간 공백으로 남겨져 있다가 마이클 위안이라는 수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지난 2002년 10월30일 수학의 정의를 한 문장으로 올리고, 이어 싱가포르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상하이 출신의 성중이 '중화인민공화국'에 관한 글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위키피디아는 2004년초 관영 신문들이 위키피디아를 호평한 것을 계기로 급신장, 그해 4~5월에는 일일 방문객이 10만명에 달하고 등록된 단어수가 1만개를 넘는 등 호황을 누리다 천안문 사태 기념일(6월15일)을 하루 앞두고 처음 봉쇄됐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첫 봉쇄는 19일만에 풀렸으며, 그 뒤로 같은 해 9월 2차 봉쇄를 겪고 4일만에 해제된 뒤 지난해 10월 3차로 차단된 이후에는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웹사이트는 현재 등록 회원만 4만5천명에 달하며 5만6천개의 단어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위키피디아가 개혁과 경제 성장을 장려함으로써 서방과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는 정책에 맞춰 위키피디아를 용인하는 자세를 취했으나, 이 웹사이트가 공산당의 정보 통제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된 것은 물론, 공동의 이해나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당 모르게 또는 당의 인가를 받지 않고 서로 만나, 생각을 교환하고 행동까지 같이 계획하는 등 우려스런 사태로 진전되고 있다고 판단하게 됐다는 것.
중국의 온라인 인구는 1억1천100만명에 달하며 매일 2만명씩 늘어나고 있다.
그간 위키페디아는 중국 네티즌들에게 당이 제공하는 정보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왔다.
예를 들어 마오쩌뚱에 대해 중국의 가장 권위있는 책자인 중국백과사전은 "중국 혁명의 기초를 놓은 위대한 기여는 지워질 수 없으며, 이는 그의 실책 보다 훨씬 위대하다"고 적고 있는 반면, 위키피디아는 "그에 대한 평가는 분명히 양극화돼 있다.
지지자들은 그가 중국 인민들로 하여금 100여년 이상의 제국주의 압제에서 벗어나도록 했다고 하지만, 반대자들은 그가 과거 봉건 왕조의 재판일 뿐만 아니라 중국 사회, 경제, 문화를 대규모로 파괴시켰다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키피디아는 결국 톈안먼 사태, 파룬궁, 대만과 같은 민감한 정치적 문제를 놓고는 네티즌들간의 사상 논쟁도 초래했다.
지난 2003년 9월 텐안문 사태(6월4일 사건)에 관한 첫 글은 "다양한 적대세력들의 베이스 캠프가 된 후 군인이 톈안먼 광장을 점거했다"는 짧은 문장에 불과했으나 두달 뒤에는 '민주화 운동'이라는 사건의 성격과 함께 많은 인명피해가 났다는 내용이 실렸다.
그뒤 1천명 이상이 살해됐다는 외신 보도를 인용하는 글이 실렸으나,이에 대해 외국인들이 학생들을 이용, 중국 정부를 전복시키려했다며 외신 보도가 편파적이라는 반박글이 게재됐다.
사상 논쟁과 함께 당국의 봉쇄조치를 경험한 네티즌들은 일부 초보자가 과격한 용어를 쓰면, 고참들이 이를 가라 앉히는 등 자체 검열을 통해 나름대로 중립적인 입장에 서려는 노력도 기울여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의 봉쇄 조치 이후 일부 네티즌들은 "혀를 자르고 눈과 귀를 가리는 것과 진배없다"며 반발하고 있으나 봉쇄가 수개월째 접어들면서 영구적으로 봉쇄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위키피디아 페이지에 "이 사이트는 중립적이라는 허울 아래 반중국 활동을 지도하고 있으며, 일부 고참 사용자들은 미국 제국주의의 주구"라고 비난하는 정부 요원이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이 오르기도 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