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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불교대국이다.
1세기 전후 서한(西汉:씨한) 및 동한(东汉:똥한) 사이에 인도의 불교가 현재 중국의 신강위구르자치구(新疆维吾尔自治区:씬쨩웨이우얼쯔쯔취)을 거쳐 중국에 전래되었다.
그 후 장안[(长安:창안) 현재 섬서성(陕西省:산씨성) 서안시(西安市:씨안쓰)] 및 낙양[(洛阳:루어양) 현재 하남성(河南省:허난성) 낙양시(洛阳市:루어양쓰)]을 중심으로 점차 동으로 팽성[(彭城:펑청) 현재 강소성(江苏省:쨩쑤성) 서주시(徐州市:쒸쩌우 쓰)]까지 전파되었고 다시 중국 전역으로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
당시 외래불교가 전파된 후 동한(东汉:똥한) 말년의 100여년 간은 상층사회에서만 전파되고 민간 사이에는 큰 호흥을 받지 못하였다.
불교가 중국에서 광범하게 전파되지 못한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언어장애로 소승불교의 경전은 인도의 속어 팔리어(중문 巴利文:빠리원)으로 저술되었고 대승불교의 경전은 인도의 산크리스트어(중문 梵文:퐌원)로 저술되었기 때문에 불경을 번역하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일이었다.
당초 불경의 번역은 전래의 보조를 따라가지 못해 삼국시기 불교는 중국에 넓게 전파되지 못했다.
불교는 진대(晋代:찐따이)에 와서야 흥성하기 시작하였다.
남북조시기(南北朝时期:난베이차오쓰치)에 비록 위(魏:웨이) 세조(世祖:쓰쭈) 태무제(太武帝:타이우띠)와 북주(北周:베이쩌우) 무제(武帝:우띠)가 불교를 폐기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지만, 전반적으로 남북조시기(南北朝时期:난베이차오쓰치)의 절대다수 통치자는 모두 불교를 강력하게 지지하였다.
수(隋:쒜이)는 비록 37년의 짧은 역사로 황제가 2명 뿐이었지만 모두 불교를 깊이 믿었으며 불교를 국교로 하였다.
당(唐:탕)은 무종(武宗:우쫑)이 대규모의 폐불사건을 일으킨 것 외에는 다른 황제들은 모두 도교와 불교를 병행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당(唐:탕) 통치자가 불교를 정돈 및 이용하였기에 불교가 급속히 발전을 하였으며 불경번역 또한 수와 질에서 상황을 이루었는데, 특히 현장(玄奘:쒸엔짱)、의정(义净:이쩡)、불공(不空:뿌콩) 등과 같은 고승들의 불경번역은 눈에 두드러졌다.
동시에 당대 불교발전의 과정에서 일부 중국 불교특색을 구비한 종파가 형성되었다.당대에는 대외교류가 빈번하여 불교가 한국과 일본 및 월남 등으로 전파되어 이들 국가의 불교발전에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원(元:위엔) 명(明:밍) 청(清:칭) 불교는 모두 매우 크게 발전하였다.
특히 원(元:위엔) 쿠빌라이(중문 忽必烈:후삐리예)가 즉위한 후의 원(元:위엔) 및 청(清:칭) 두 소수민족 통치자는 모두 불교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들이 강력하게 주도한 것은 라마교였다.
라마교는 이로 인하여 두번에 걸친 신속한 발전을 하였다.
불교는 황실의 숭불 및 예불로 발전을 하였다.
명(明:밍) 황실은 비록 전후 왕조처럼 불교를 깊게 믿지는 않았지만 불교는 전반적으로 꾸준한 발전을 하였다.
외래종교로서의 불교는 중국으로의 전래와 발전에 2000여 년의 역사를 거쳐 오늘날 중국에서 발생하고 성장한 도교를 제치고 중국에서 신도가 제일 많은 중국 최대의 종교가 되었다.
불교의 전래는 중국문명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음악 시가 회화 건축영역에 대하여 영향이 많아 만약 공을 들여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불교는 또한 현재 중국의 도덕교양 시비표준 정신의탁 세속추구에 대하여 모두 보이지 않는 비중의 영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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