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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차이나 > 중국참여란 > 소설  
황혼의 상하이탄 <12회>:"결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니까요"
북경시간: 2006-09-09 02:14:18 
 

"옛…말이 하나도 안…틀리네요. 안 그래요, 오기자님. 그런데 타락의… 종착역은 어디겠어요? 죽음…이예요. 죽…음!"

   
  ▲ 그림=이용호 화백  
 
수화의 재서에 대한 칭호가 갑자기 이전 직업인 기자로 바뀌었다. 비록 서러운 울음을 그치고 있지는 않아도 그녀가 서서히 이성을 찾아가고 있다는 조짐이었다. 재서는 혹 그녀의 말에서 뭔가 건질 것이 있다는 직감을 불현듯 느꼈다. 그는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응시한채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두서는 별로 없어도 울음 머금은 수화의 말은 재서의 기대 훨씬 이상이었다. 장혁에게서는 듣지 못해본 살아 있는 전혀 새로운 정보들이 적지 않았다. 수화가 희덕과 10여년간 살을 부비고 살면서 고운정 미운정 다 든 여자가 분명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는 수화의 얘기를 다 듣고나서 비로소 "여자는 돈을 벌기 위해 타락하고 남자는 돈을 벌어야 타락한다"는 그녀의 말이 확실하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희덕은 그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어두운 세계에 깊숙하게 발을 들여놓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는 갑자기 강렬한 허기를 느꼈다. 저녁을 먹고 가라는 장혁의 말을 뿌리치고 량마허로 달려와 몹시 시장한 탓도 없지 않았으나 주위에 뭔가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도지는 그의 예의 이상한 증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말을 다 마치기 무섭게 터져나온 수화의 마치 귀곡성(鬼哭聲)같은 소름 끼치는 통곡에 덜 움찔한 것은 아마도 그래서였는지도 몰랐다. 하기야 그는 바로 옆자리에서 자신과 수화의 대화를 작심하고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는 웬 20대 초반 청년의 존재조차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청년은 이날 내내 재서의 뒤를 밟고 있는 중이었다.

"너 정말 계속 이렇게 애를 먹일 거야. 네 나이가 도대체 몇인데 고집을 부리는 거야, 고집을. 어휴, 내가 정말 속이 타서…"

등옥환(鄧玉環)은 차라리 귀를 막고 싶었다.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벌써 며칠째 듣는 지긋지긋한 소리였다. 좋은 소리도 자주 들으면 싫증이 나는 법인데 듣기 싫은 소리를 하루가 멀다하고 들으려니 그녀로서는 괴로움이 그야말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밥 맛도 도무지 있을 턱이 없었다. 그녀는 독하게 마음 먹고 자신을 다그치는 모친에게 그예 모진 말 한마디를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자꾸 그러면 나 내일이라도 당장 독일로 다시 돌아가버릴 거예요. 그래도 좋아요?"
"아니 이 아이가 정말. 기가 막혀…그게 도대체 엄마라는 사람한테 할 소리라고 생각하니?"
옥환의 모친 강휘(康輝)여사도 지지 않았다. 곧 30대의 나이에 접어들 딸을 어떻게든 그 이전에 시집을 보내겠다는 것이 올해부터 확고하게 다진 그녀의 생각이었으므로 밀려서는 결코 안될 일이었다.

"아 글쎄, 결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니까요"
옥환은 여전히 단호했다. 꿈에서도 생각지 못한 결혼을 하느니 차라리 한달여전 짐을 싸서 돌아온 독일로 다시 가 하빌리타치온(Habilitation) 과정에 도전하는 게 더 낫겠다는 것이 그녀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비록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9년만에 귀국은 했으나 박사 학위만 받고 교수 자격 취득 과정인 3-4년간의 하빌리타치온을 마치지 못한 데에 대한 아쉬움이 없지 않은 터였으므로 다시 못 돌아갈 것도 없었다.

"한번만이라도 보고 싫다고 하면 내가 이러지도 않아. 그래! 딱 한번만 보자, 한번만"
강여사의 어조가 배수의 진을 친 딸의 완강한 기세에 눌려 그런지 한결 부드러워졌다. 마치 애걸하듯이 한번만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홍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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