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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상하이탄 <68회>:"우리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요?"
북경시간: 2006-09-09 16:15:28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요? 바로 이맘 때쯤이었죠. 정확히 1년이 지났네요"
"그래, 어제 일인 듯 분명하게 기억이 나. 1년이 별로 긴 세월은 아닌 것 같아"

   
  ▲ 그림=이용호 화백  
 
"나도 그래요"
"나는 지금도 그 여드름 덕지 덕지 난 친구가 무척이나 고맙게 생각돼, 샤오환!"
"어휴, 나는 그 애 생각만 하면 마구 소름이 돋는데…지금이야 어쩌다 가끔 나를 보면 슬슬 피하지만 그때는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아무 일 없었잖아. 어쨌든 그 친구 덕택에 나와 만나게 됐고. 나는 하늘이 우리를 맺어주려고 그 친구를 보내준 것이 아닌가 싶어. 이상하게 그 때 그 일 이후에는 별로 나쁜 짓도 안하잖아"
"하긴, 그렇긴 하네. 그래도 나는 아직 그때의 악몽을 떨쳐버리지 못하겠어요. 평생 처음 당해본 일이었거든요. 오죽 했으면 내가 여기에서 계속 공부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겠어요"

옥환이 가만히 몸을 떨었다. 1년전 오일렌바움 기숙사 앞에서 독일 소년들에게 봉변을 당할뻔한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몸짓이었다. 재서는 안쓰러운 마음에 그녀를 가만히 안았다. 옷을 입은 채 누워는 있었어도 평소보다 훨씬 더 육감적인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이 아련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서서히 솟아나는 만만치 않은 성욕을 느껴야 했다. 확 풀어버리면 그럴 수 없이 좋겠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적지 않은 고통을 수반하는 성욕이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본능에 충실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머리를 가로저었다. 가능한 한 최후까지 지켜주고 싶은 옥환의 처녀성을 아직은 유린하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비록 21세의 완전한 성년이기는 했으나 섹스에서도 도덕을 중시하는 그에게 그녀는 여전히 고교를 졸업한지 겨우 1년에 불과한 어린 여학생으로밖에는 비춰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누운 자세에서 심호흡을 몇 번이나 거듭했다. 못 견딜 것 같은 성욕이 가라앉으면서 마음이 평온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래, 잘했어. 그 정도 시련은 이겨내야 소기의 목적인 박사 학위를 취득하지. 나는 샤오환이 베를린에 가서도 잘 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나도 짬만 나면 자주 가도록 할게. 방학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고마워요, 쉬꺼"
"고맙기는. 오히려 내가 고맙지. 나같은 장래 불투명한 학생을 그래도 남자로 생각해줬으니까, 안 그래?"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겸손한 것은 좋지만 자괴감은 안돼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인간 오재서이지 무슨 엄청난 조건을 가진 백마 타고 오는 왕자가 아니예요. 알아요?"
"그래 그래, 다음부터는 절대 그런 소리는 안할게. 미안해 샤오환!" 
"아, 참!" 

옥환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목소리의 옥타브를 높였다. 재서는 깜짝 놀라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왜! 뭐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어. 내일 저녁 8시 기차로 떠나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하루 온종일 시간이 있으니"
"아니, 그게 아니고…"
"무슨 일인데?"
"저기, 자…비네 언니는…" 

옥환이 얼굴을 붉힌채 자비네를 들먹였다. 그녀를 생각하면서 목소리를 높인 것이 못내 부끄러운지 말도 더듬고 있었다. 하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혹 라이벌일지도 모를 여자와 관련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 유쾌할 까닭이 없기는 했을 터였다.
"……"

(홍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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