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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기간:기원 1866년~기원 1925년.
광동성(广东省:광똥성) 중산(中山:쫑싼) 출생.
중국 정치가·혁명지도자.
자는 일선(逸仙:이씨엔), 호는 중산(中山:쫑싼).
공화제 창시자로 <국부(国父:꾸어푸)>로 추앙되었다.
가난한 농가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14세 때 하와이에서 살고 있는 형 손미(孙眉:쑨메이)에게로 건너갔다.
그리스도교 계통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서양문화를 체득하였다.
18세 때 귀국하여 홍콩에서 세례를 받고, 광주(广州:광쩌우)의 의학교(医学校:이쒸예쌰오)에서 삼합회(三合会:싼허훼이) 수령인 정사량(郑士良:쩡쓰량)과 만났다.
1887∼1892년 홍콩에서 서의서원(西医书院:씨이쑤위엔) 재학중 혁명에 뜻을 두고, 1892년 마카오‧광주(广州:광쩌우)에서 개업하였으며, 동시에 반청운동(反淸运动:퐌칭윈똥)을 시작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에 즈음하여 형 손미(孙眉:쑨메이) 등의 지원 아래 하와이에서 흥중회(兴中会:씽쫑훼이)를 조직하여 화교(华侨:화쨔오)‧회당(会党:훼이당)과도 제휴하고 이듬해 10월 광주(广州:광쩌우)에서 최초의 거병을 시도하였으나 실패로 끝났다.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1896년 하와이를 거쳐 런던으로 갔다.
런던에서 청(淸:칭) 공사관에게 체포되었으나, 서의서원(西医书院:씨이쑤위엔) 재학시의 옛 스승 등에 의해 구출되어 《런던피난기》를 영문으로 발행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영국 체류중에 견문을 넓히고, 유럽 선진국의 사회적 모순에 눈을 떠 삼민주의(三民主义:싼민주이)를 착상하였다.
1897년 미국을 경유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강유위(康有为:캉이어우웨이) 등과의 제휴 및 필리핀 독립원조를 시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고, 1900년에 제2차 거병(惠州事件:훼이쩌우쓰찌엔)을 꾀하였지만 역시 실패로 끝났다.
손문(孙文:쑨원)이 두번째 세계여행을 하는 동안에 일본에 유학한 학생이 증가하여 그 혁명화가 진척되었는데, 중국 국내에서도 광복회(光复会:꽝푸훼이)와 화흥회(华兴会:화씽훼이) 등의 혁명조직이 생겼다.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갈 무렵, 도쿄(东京:똥찡)에서 여러 혁명세력을 규합하여 중국동맹회(中国同盟会:쫑꾸어통멍훼이)를 결성하고 삼민주의와 혁명방략(革命方略:꺼밍퐝뤼예)을 정하였다.
그 뒤 신해혁명(辛亥革命:씬하이꺼밍) 때까지 중국 중·남부 각 지방에서는 10회가 넘는 반청무장기의(反淸武装起义:퐌칭우쫭치이)가 되풀이되었다.
이 동안 손문(孙文:쑨원)은 제3‧4의 세계여행을 하였는데, 1911년 10월 군자금모집을 위해 미국에 체류하던 중 신해혁명(辛亥革命:씬하이꺼밍)이 일어나자 열강의 원조를 기대하여, 서유럽을 순회하고 귀국하였다.
임시대통령으로 추대되어 1912년 1월 1일 중화민국(中华民国:쫑화민꾸어)을 발족시켰으나, 얼마 뒤 남북화의(南北和议:난제이허이)에 의하여 정권을 원세개(袁世凯:위엔스카이)에게 넘겨주었다.
사회개혁을 지향하였으나 송교인(宋敎仁:쏭쨔오런) 암살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제2혁명에 실패하고 또다시 일본으로 망명, 중화혁명당(中华革命党:쫑화꺼밍당)을 창설하였는데 송경령(宋庆龄:쏭칭링)과 재혼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제3혁명에서 원세개(袁世凯:위엔스카이)가 타도된 뒤 군벌(军阀:쮠퐈) 혼전상태 아래서 호법운동(护法运动:후퐈윈똥)을 일으켰으며, 세번째로 광주(广州:광쩌우)를 중심으로 정권수립에 힘썼다.
1924년 1월 중국국민당(中国国民党:쫑꾸어꾸어민당)을 개편한 뒤 중국공산당(中国共产党:쫑꾸어꽁찬당)과 국공합작(国共合作:꾸어꽁허쭈어)하고, 노동자·농민의 결속을 도모하여 국민혁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11월 북상선언(北上宣言:베이쌍쒸엔이엔)을 하고, 북상의 길에 올랐으며 도중 일본에 들러 <대아시아주의>를 제창하였고, 국민회의를 개최하기 위하여 북경(北京:베이찡)에 들어갔으나, <혁명은 아직도 이룩되지 않았다>고 하는 밀을 남긴 채 1925년 3월 북경(北京:베이찡)에서 세상을 떠났다.
1929년 그의 유해는 북경(北京:베이찡) 근교의 서산(西山:씨싼)에서 남경(南京:난찡) 교외의 중산릉(中山陵:쫑싼링)으로 이장되었다.
손문(孙文:쑨원)의 정치사상은 민족(民族:민쭈)‧민권(民权:민취엔)‧민생(民生:민썽)의 삼민주의(三民主义:싼민주이)로 대표되는데, 이것은 태평천국(太平天国:타이핑티엔꾸어)의 혁명적 전통을 이어받고, 19세기의 자연과학(진화론), 프랑스의 혁명사상(인민주권설), 영국의 사회학설(H. 조지의 단세론 등)을 도입하여, 중국 현실에 적합하게 한 것이며, 민족독립과 인권존중 및 사회평등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였다.
만년에는 연소(联苏:리엔쑤)‧용공(容共:롱꽁)‧농공부조(农工扶助:농꽁푸쭈)의 3대정책으로 발전시켰는데 모택동(毛泽东:마오쩌똥) 등이 신민주주의 기본이념으로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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