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간:기원전 145년~미상.
섬서성(陕西省:산씨성) 하양[夏阳:쌰양/현재 지급시 위남시(渭南市:웨이난쓰) 관할의 한성시(韩城市:한청쓰)] 출생.
중국 역사학자.
서한시대(西汉时代:씨한쓰따이) 문학가‧역사학자로 자는 자장(子长:쯔창)‧태자공(太子公:타이쯔꽁)이다.
출생연대는 기원전 145년이고, 사망연대는 미상이다.
어렸을 때부터 고문(古文:구원)으로 쓰여진 전적(典籍:디엔찌)을 배웠고,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적을 탐방하여 견문을 넓혔다.
아버지 사마담(司马谈:쓰마탄)은 한무제(汉武帝:한우띠)가 거행한 태산(泰山:타이싼)에서의 봉선(封禅:풩싼) 의식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해 괴롭게 여기다가 분사하였는데, 죽기 전에 고대로부터 당시까지의 역사를 저작할 것을 사마천(司马迁:쓰마치엔)에게 부탁하였다.
기원전 108년 아버지에 이어 태사령(太史令:타이스링)에 임명된 사마천(司马迁:쓰마치엔)은 먼저 역법개정에 종사하여 기원전 104년 태초력(太初历:타이추리)을 완성하였고, 이어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통사(通史:통스) 편찬에 착수하였다.
기원전 99년 한(汉:한)의 장군 이릉(李陵:리링)이 흉노(匈奴:쑝누)와 싸우다가 패하여 포로가 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릉(李陵:리링)의 처분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일가멸족의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했으나, 사마천(司马迁:쓰마치엔) 혼자만 이릉(李陵:리링)의 충절과 용감함을 칭찬하고 변호했으므로 한무제(汉武帝:한우띠)의 격분을 사서 궁형(宫刑:꽁씽)에 처해졌다.
몇 년 후 출옥하여 중서령(中书令:쫑쑤링) 직책으로 복귀하였다.
그 뒤 정신적 타격에도 굴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통사저작에 전력을 기울여 마침내 《사기(史记:스찌)》 130권을 완성하였다.
그가 《사기(史记:스찌)》를 저술한 직접적인 동기는 아버지의 유언에 의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분사와 이릉(李陵:리링)사건을 통해 인간의 운명에 대한 큰 의문을 품게 된 사마천(司马迁:쓰마치엔)은, 사실의 정확한 검토를 통하여 인간의 종합적 가치를 결정하고 인과관계의 불합리성을 하늘(天:티엔) 대신 수정하는 일에서 역사학이 지니는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