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표적인 역사지도집으로 "중국역사지도집(中國歷史地圖集)"을 들 수 있다. 모두 8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느꼈던 역사 지명과 위치 등에 대해 편리를 제공하여 중국역사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애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지도집을 자세히 보면, 중국 각 왕조의 영토가 외국에서 발행된 각 왕조의 지도에 비해 영토가 크게 표시되어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지도를 어느 시대를 기준으로 제작했는가 때문이다.
"중국역사지도집"은 대체적으로 중국 각 왕조의 최고 전성시대의 영토를 반영하고 있다. 즉 한 왕조가 짧게는 몇 십년 길게는 몇 백년의 역사가 있지만, 우리가 지도를 통해 보는 것은 그 왕조의 최고 전성시대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중국 각 왕조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중국역사지도집"을 이용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점은 "중국역사지도집" 각 왕조의 지도를 그 왕조의 모든 연도에 적용하여 인용하는 것은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우리가 서한의 역사를 논할 때, 일반적으로 개국초기와 대외적으로 영토를 확장한 한 무제(漢武帝)시대를 많이 언급한다.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항우(項羽)와 천하 패권을 다투고 천하를 통일한 시기는 기원전 202년이며, 기원전 195년 그는 붕어한다. 한 무제는 기원전 140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87년에 붕어한다. 하지만 "중국역사지도집" 서한시기의 지도는 한 성제(漢成帝) 원연(元延:기원전 12년-기원전 9년)과 수화(綏和:기원전 8년-기원전 7년) 년간의 상황을 위주로 표기하고 있다. 이유는 당시의 지도를 제작함에 있어 인용한 『한서(漢書)』의 『지리지(地理志)』의 내용이 한 평제(漢平帝) 원시(元始) 2년(기원 2년)의 제도로, 이 때의 기록은 앞에서 말한 기간의 기록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기준으로 만든 지도를 서한 다른 시대를 연구하면서 그대로 인용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법이다. 한 나라의 행정구역이 그 나라가 건국되어 멸망하기까지 변하지 않고 끝까지 유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것은 현존해 오는 역사기록을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지금 우리나라의 행정구역이 건국이래 계속하여 변하고 있는 상황과 같이 이치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변하는 행정구역을 지도 한 장으로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중국에서 발행된 "중국역사지도집"은 우리들에게 한 지도가 어느 한 특정 연도를 기준으로 개괄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을 뿐, 그 왕조 등의 모든 역사시대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때문에 중국의 각 왕조를 연구함에 있어 "중국역사지도집"을 인용할 때는 비록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인용하는 지도가 과연 연구하는 시기의 행정구역과 얼마나 부합되는지 먼저 연구를 해야 자료인용에 있어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중국역사지도집" 뿐만 아니라, 다른 역사지도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